남녀관계의 사회적 규범_by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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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관계의 사회적 규범
  결혼은 인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결합 방식이므로 이에 대한 탐구는
우리들의 인류 사회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인류
사회가 발전한 기본 규율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결혼 형태의 변화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회 발전과 긴밀한 관계가
있으며, 그 사회 발전 수준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 준다. 인류 역사상 상고 시대
인류가 장기간의 군혼과 잡교의 단계를 거쳤음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옛날 태고 시대에는 항상 군주가 없었고, 백성들은 무리를 지어 살았으며,
어머니는 알았지만 아버지는 몰랐고, 친척.형제.부부.남녀의 구별이 없었으며,
상하.장유의 도가 없었다.
  위 글에서는 중국에서의 군혼과 잡교는 태고 시대부터 있어 왔으며, 상고
시대에는 남녀가 어울려 놀았지만 중매도 없었고 결혼도 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 당시는 친척, 형제, 자매, 부부 등의 구분 없이 모여
살았으며, 남녀 관계는 혼인이라는 의식을 거치지 않은 "잡유", 즉 잡교가
성행하였다. [예기.곡례]에서는 이러한 잡교 상태를 일컬어 "부자취진"이라고
했다.
  원시 사회 이후에 출현한 씨족은 인류 최초의 연합체이다. 이 시기에는 남녀
관계를 물질적인 생산력으로 조절할 수 없었으며, 생산 활동을 주도하는 집단
또한 성 집단이 아니었다. 씨족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어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씨족과 연합체를 이루어야만 했다. 이 연합체는 생산적인 사회 관계를
기초로 하여 결성된 것이 아니라 남녀 관게의 연합이라는 토대 위에 가능했다.
다시 말해서 씨족 사회 초기에는 생산적인 사회 관계와 남녀간의 사회 관계가
병존했는데, 전자는 경제적 측면에서 씨족 구성원들을 하나로 연계시켰고,
후자는 남녀간의 결합을 가져왔다. 생산 관계와 생산인의 관계는 상호
배타적이다. 동일한 경제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끼리는 교합이 불가능했지만,
경제적으로 독립된 사람들끼리는 가능했다. 이를 "족외 군혼"이라고 한다. 족외
군혼은 씨족과 씨족 간의 결혼이지 개체와 개체를 위한 결합이 아니므로 모든
개체는 다른 씨족의 개체와 교합할 권리가 없다. 이런 점에서 족외 군혼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혼인으로 볼 수 없다.
  봉건 사회로 진입한 후에도 중국 이외의 소수 민족 중 적지 않은 수가 원시
군혼 단계 상태에 머물렀다. 가령 그 당시 고려 사람들의 "풍속은 음란하였지만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풍속에는 많은 수의 유녀가 있고, 남자도 항상 그
사람이 아니었다. 밤이 되면 남녀가 모여 놀았으며 귀천의 구분이 없었다."
  엄격한 의미에서 군혼과 잡교의 구분은 일정한 규범과 지역의 제한 여부에
따른다. 군혼은 인류가 몽매하던 시대의 후기에 나타난 혈연혼의 시작이고,
잡교는 어떠한 규범의 제한을 받지 않으며, 같은 무리끼리 거주하는 동물처럼
성관계를 갖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잡교가 어떤 질서도 없이 문란한
성행위만을 추구했다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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