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합 행위와 야합 혼인_by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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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합 행위와 야합혼
  성인 공자는 야합의 산물이다. "옛날 혼례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하나의
예절이라도 갖추어지지 않으면 이것을 자유롭게 성교를 나누었다고 하고
야합이라고 했다... 안씨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혼인을 하였으니, 어찌 육례
중 갖추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흘은 안씨와 화합하여 이산에서
기도하며, 그를 위해 기뻐했다." "숙량흘과 안씨의 딸이 이구에서 기도하고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 이구에서 땅을 쓸고 하늘에 제사지내는 단을 만들어
기도하여 마침내 공자를 낳게 되었다. 때문에 야합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록을
보면, 공자는 예의에 어긋난 출생이지만 그로 인해 당시 사람들의 비난이나
멸시를 받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사회적으로 야합이 허용된 때와 장소, 즉
춘사중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야합 행위는 야홉혼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야합혼은 결혼 예법을 어기고
남녀간의 애정으로써 결합하는 것으로, 엄밀하게 따지면 부부로 인정되지
않았다.
  남성이 "음분" 혹은 "야합"할 경우를 살펴보면, 예절에 따라 아내를 얻을 수
있었으며, 이미 아내가 있어도 다시 야합의 과정을 통해 첩을 얻을지라도
남편으로서의 지위를 잃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성이 일단 야합 행위를 하면
남자 쪽에 아내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천구인에게 딸이 있는데, 맹씨의 사당에 휘장을 치고 드디어 화자와
야합하자, 동료들이 따르는 꿈을 꾸었다. 청구 사당에서 맹세하기를, "아들을
낳으면 서로 버릴 수 없다" 하였다. 희자는 그녀들로 하여금 원씨의 첩이
되도록 했다.
  또 초평왕이 공자였을 때 채나라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 변방을 지키는
지위가 낮은 관리의 딸과 정을 통하여 부부관계를 맺였다. 이후에 초나라의
국세가 변화하여 공자는 돌아가 국왕이 되었고, 아들도 가리고 가서 태자로
삼았지만, 태자의 어머니는 결혼할 때 혼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변방에
남아 외로운 첩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춘추 시대의 공왕이 경수 가를 유유히 거닐때, 밀땅의 강공이 동행을 하였다.
세 명의 여자가 강공과 사통을 했다. 강공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반드시
그녀들을 천자에게 바쳐라. 짐승이 셋이면 군이 되고, 사람이 세 명이면 중이
되며, 여자가 세 명이면 찬이 된다. 천자는 사냥을 하여 일망타진하지 못한다.
군주가 출행할 때는 경의 지위를 뛰어넘은 후에야 비로소 수레에 오르고,
돌아올 때는 경의 지위를 뛰어넘은 후에야 비로소 수레에 오르고, 돌아올 때는
경의 지위에 이르지 못하면 수레에서 내린다. 도중에 사람들을 만나면 몸을
굽혀 인사를 하여 예의를 행한다. 천자도 감히 아버지가 같은 세 딸을 비빈으로
삼지 못한다. "찬"은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으로, 아버지가 같은 세 딸이 당신과
사사로이 분하였으니, 너는 어떤 덕으로 이것을 감당하겠느냐? 천자는 이것을
부끄러워하는데, 하물며 너는 소인배로구나. 소인배가 아버지가 같은 세 자매를
처첩으로 삼았으니, 결국에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런 풍속은 한대에도 여전히 남았다. 예를 들면, "이 봄날 대회는 물에서
씻고 노닐며, 마시고 연회를 마친 후에는 짝을 지어 혼인을 했다." 또한 "매월
중순에 나이어린 여자들이 생황을 불어 서로 밝은 달빛 아래로 불러서 조화를
이루며 노닌다. 그날 밤은 즐기려고 생각하고, 이경이 된 후에는 짝을 지어
둘씩 손을 자고 어머니를 따라 서로 성교한다. 새벽이 되면 흩어진다"라고
했다.
  특히 연나라 땅에서는 야합 행위가 더욱 두드려져, "빈객이 지나가면
부녀자에게 모시고 잠을 자게 했다. 시집가고 장가가는 날의 저녁에는 남녀의
구별이 없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했다."
  한대 유적에 남겨진 몇몇 성 문물 중에 야합도는 매우 독특한 것이며,
우리들에게 하대의 성 개방 풍조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가령 사천
성도에서 발견된 야합도가 있다. 이 그림은 한 부녀자가 옷을 뽕나무 위에
걸어놓고, 광주리는 옆에 버리고 남자와 전라의 모습으로 나무아래에서
야합하는 모습이다. 또한 어떤  야합도는 전라의 한 남자가 있는데, 자리에
앉아 거대한 남근을 드러내놓은 채 손으로 잡고 있으며, 중앙에는 한
나뭇가지가 만들어져 있고, 위에는 잎이 늘어져 있다. 나무 아래의 두 사람 중
한 명은 위에 있고, 아래쪽에 있는 사람의 어깨 위로 말을 타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남녀가 성교를 하고 있는데, 남자는 위에서 생식기를 잡고 있고,
여자는 아래에서 두 다리를 올리고 남자의 어깨를 감싸쥐고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전라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후대의 무덤안에서도 많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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